제목 | 반야지혜와 자비행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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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1-19 |
❤ 미산 스님, 상도선원 자애미소명상법회 법문
2015년 8월 2일
우리 삶 속에서 지혜를 쓴다는 것은 즉, 자비심으로 행동한다는 것
먼저 인도스님으로써 티벳에서 아주 잘 알려진 첸드라낄의 월층 스님의 게송을 경청하시겠습니다.
“모든 생명의 고통을 가엽게 여기는 자비심은 그 자체로 모든 생명을 기르는 물과 같다. 영원한 극락이 가득 찬 것으로써 부처님의 지혜를 풍성하게 하는 씨앗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먼저 자비에 귀의한다.”
간단한 게송이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자비는 반야지혜를 바탕으로 드러나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지만.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지혜를 쓴다는 것은 즉, 자비심으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지혜를 바탕으로 한 자비야 말로 참다운 자비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완성이 되어야지 그때 참다운 자비가 나온다?’ 라고 생각해서 지혜 개발 수행을 하는데 자비를 등한시 했을 때 정말 참다운 지혜가 발현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상도선원에서는 이런 자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실천방향을 고전에서 찾아서 현대적으로 잘 응용해서 행법을 만들어서 우리 불자들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상관없는 일반 사람들이 우리 행법을 실천할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애미소명상연구회’ 명칭을 일반사람들이 듣고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인, 하지만 들으면 ‘아 이것이구나’ 느낄 수 있는 명칭을 공모 했는데 우리가 처음 사용했던 “Heart Smile Meditation” 혹은 “Heart Smile 명상”이 당첨이 되었습니다. 큰 명칭으로 “Heart Smile Forest”로 상도선원이 국제 명상센터 발전했을 때 가져갈 수 있도록 정했습니다. 음양오행으로 작명을 전문으로 하시는 거사님이 계시는데 “Heart Smile Forest” 듣자마다 ‘스님! 이것은 원방각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원은 하늘, 방은 땅, 각은 사람을 뜻하는데 천지인 삼인이“Heart Smile Forest”에 다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음양오행을 기준으로 Forest는 땅, Heart는 사람, Smile은 하늘이라고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이타주의의 확산
자비를 이야기 하다보면 불교의 모든 것의 바탕이 지혜면서 자비고, 자비이면서 지혜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그것을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전하는 분은 달라이라마 스님이십니다. 한발 더 나가서 ‘나의 종교는 자유이다.’ 21세기는 종교가 전통으로서 어떤 자기의 틀에 갇힌 종교로서의 역할은 적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나는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성적이다 혹은 정신적인 삶(가치를) 추구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그룹이 늘어난다. 이런 사람들은 종교는 없지만 명상 좋아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서 동물을 학대하고 인권 유린하는 이런 것을 반대하고 하지 않도록 하는 캠페인을 한다는 사람의 숫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효율적인 이타주의’라는 강의를 해서 들었는데 요즘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분들이 엄청난 재산을 제3세계, 빈자들에게 나누고 있는데 이런 기부하면서 기부 문화를 확산시켰어요. 어떻게? 기부 문화는 돈 많은 기업인들만 하는 것인가? 아프리카의 한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한 끼를 줄 일수는 없어도 반찬 가지 수를 줄이려는 노력이 충분히 가치 있고 효과적인 이타심이라는 것이죠.
자비의 종류_유마경
마지막으로 유마경에 나오는 자비의 종류가 있는데 오늘은 읽고 다음 달 자애미소명상 시간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7품 ‘보살의 사무량심’에서 근원적인 말씀을 잘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경청하시면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만약 모든 보살이 모든 중생을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그들에게 대자를 어떻게 행합니까?"
유마 힐이 말했다.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관찰하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이 법을 말하여 그들이 깨닫도록 하겠다.' 하니, 이를 일러 큰 자애를 진실로 행하여 모든 중생에게 최상의 안락과 행복을 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적멸의 자애를 행하니 온갖 취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번뇌가 없는 자애를 행하니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여실한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로서 자애를 행하니 삼세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어긋나지 않는 자애를 행하니 모든 것이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둘 없는 불이의 자애를 행하니, 안과 밖이 하나로 통하기 때문이다.
무너짐이 없는 자애를 행하니, 끝내 머물기 때문이다.
깨끗한 자애를 행하니 본성은 이미 깨끗하기 때문이다.
아라한의 자애를 행하니 번뇌라고 하는 도적을 영원이 멸했기 때문이다.
독각의 자애를 행하니 스승과 제자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의 자애를 행하니 중생의 지혜를 성숙시키느라 쉼 없이 정진하기 때문이다.
여래의 자애를 행하니 모든 법의 진실하고 여여한 자성을 깨닫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자애를 행하니 잠이 들어 꿈속을 헤매는 모든 중생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자애의 자애를 행하니 모든 법의 본성은 자연스럽고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보리의 자애를 행하니, 한 맛과 같기 때문이다.
치우침이 없는 자애를 행하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대비의 자애로 행하니 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다툼이 없는 자애를 행하니 무아를 관찰하기때문이다.
싫증이 없는 자애를 행하니 자성이 공함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법을 베푸는 자애를 행하니 사건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계를 잘 지키는 자애를 행하니 계를 범한 모든 중생의 지혜를 성취시키기 때문이다.
잘 참고 견디는 자애를 행하니, 자기와 타인을 알맞게 수호하여 손해가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정진의 자애를 행하니 중생이 이익 되고 즐거운 일이 절로 지기 때문이다.
선정의 자애를 행하니 집착과 탐심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