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사람 수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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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1-19 |
서옹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위진인 차별 없는 참사람, 차별 없는 참사람이 우리 본래 본성이라는 겁니다.
불교 선에서는 부처님 당시 때부터 이 근원적인 것에 입장을 본래 우리는 맑고 밝은 온전함으로 지혜로 충만하고 자비로 무궁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이게 본래의 생명성 큰 스님께서는 이것을 임제스님의 무위진인(無位眞人) 사상에서 갖다 쓰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쓰지 못하고 망각하고 참사람이 아닌 거짓사람 망심으로 살아가느냐 이건 간단하다는 거죠. 망심에 물들어 있는 순간은 우리가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해요. 지혜로 충만하고 자비로 무궁한 이 본질을 보지 못합니다.
지혜로 충만하고 자비로 무궁한 이것은 본래 텅 비어있습니다. 텅 비어 있으면서 무한한 지혜와 통찰이 나오고 텅 비어 있으면서 무궁한 자비 따스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밝음과 따스함, 지혜와 자비는 참사람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삽니다. 이것을 망심이라 표현하셨죠.
그래서 너와 나, 있는 것과 없는 것, 주관과 객관,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팽배해집니다. 특히 이 과학문명 시대에는 그렇게 해야지만 객관적 관찰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끊임없는 과학발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게 삶의 전부인양 인식하고 산다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진짜 행복하다면 점점 더 인간 본연의 지혜로움과 자비로움이 드러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인간성이 피폐해지고 지혜로운 자는 점점 적어지고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니까 뭔가 근본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가르침은 서옹 큰 스님께서는 항상 저에게도 너는 참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참사람이란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임제록에 나옵니다.
수처작주는 따를 수(隨)자 곳 처(處)자 지을 작(作)자 주인 주(主)자입니다. 가는 곳마다 어떤 순간에라도 주인이 주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 참사람으로서의 주체성은 무엇이냐. 늘 지금 여기서 깨어서 본질적인 지혜와 통찰을 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 가지고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존재들과 나누는 그런 삶의 태도를 항상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이것을 자비라 그러지요.
지혜로 충만하고 자비로 무궁한 삶을 사는 자가 바로 무엇이냐 바로 주체적으로 사는 자. 주체적으로 사는 자를 누구라 하느냐. 참사람이라고 합니다. 수처작주 가는 곳마다 임하는 때 어느 때든지 바로 주체죠. 주인공으로 살아라 그랬을 때 그 자리가 입처개진 바로 그 존재가 참사람이 서있는 곳 설립(立)자요, 처 곳 처(處)자, 개진(皆眞), 모두 개(皆)자 모두가 다 참 진실이 되고 사실이 되고 진리가 된다. 이게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고 하는 유명한 말씀이죠.
그래서 큰 스님은 누가 글을 써 달라하면 거의 많은 경우에 수처작주를 써 주셨어요. 저도 제 방에 유학 가기 전에 내려주신 수처작주 모시고 있거든요.
주체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면 21세기 백세시대를 행복하게 살아가기는 정말 힘듭니다. 그냥 새로운 정보 물결들이 끊임없이 밀려와서 주체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계속 유혹을 합니다.
사실 불교는 너무나 정확하고 확실하게 현대인들에게 맞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반이 얼마 전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어요. 불교는 흠잡을 데 없는 이론과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실천을 안 하기 때문에 교리체계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100% 공감' 이렇게 날렸어요. 실제 그렇거든요. 앞으로 우리 불자들이 정말 이 시대에 맞는 부처님 가르침을 바로 실천하고 생명력을 가지고 내 자신의 삶을 바꿔가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개조시키는 그런 수행을 끊임없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새해 첫 법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께 이런 말씀 드리고 싶었구요.
백세시대를 사는 두 가지 키워드 중 첫 번째는 재미랍니다.
김정운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백세시대를 사는 두 가지 키워드 중 첫 번째는 재미랍니다. 우리 옛날 스님 중에 문도 스님이 있는데 법문을 만담같이 하시는 분이 계세요. 들을 때는 박장대소하고 뱃가죽이 아플 정도로 웃는데 음담패설도 자유롭게 하세요. 특히 새마을운동 하는 지도자들에게 최고 인기강사에요.
그런데 법문에는 부처님 법은 언어화 되어서 나왔을 때 세상을 밝게 하고 따스하게 하면서도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이게 재미입니다. 현대인들의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가 재미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는 의미가 같이 결부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나한테는 재미있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즐거운 일이 내 이웃과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야 봐야 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공부, 백세까지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려면 공부를 해야 해요. 공부는 책 읽고 사색하고 하는 게 공부겠지만, 불교 관점에서 공부는 마음공부입니다. 마음공부를 해야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남들한테 적선을 하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업적을 쌓고 다 하더라도 마음공부가 잘되는 것은 아니에요. 착한일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은 한 부분입니다.
근본적으로 이 착한 일이 나오는 마음 바탕에 대한 깨달음 이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즘 독일에서 연구해서 발표한 것을 보면 90명의 명상자들을 선정해서 90일 동안 20명의 명상지도자들이 자비명상을 했는데 공감과 자비가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하게 밝혀냈어요.
옛날에는 심리학에서 다르다고는 이야기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말 못했거든요. 자비하고 공감은 다르다. 뇌의 다른 영역이 작동하고 있다. 공감은 에고가 그대로 있는 거예요.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나 에고는 텅 비어서 없다고 하는 자각과 함께 일어나는 근원적인 자비, 아까 큰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냥 자연과 내가 하나임이 너무 명백한 거예요. 그렇게 되었을 때 뇌 자기공명영상(FMRI)을 찍어보니까 정말 다른 부위가 작동되는 거예요. 그런데 공감은 공감을 많이 했어도 어느 시점이 되니까 자기 에고를 괴롭히는 거예요. 백화점 점원이나 비행기 스튜디어스들 얼마나 친절합니까? 그리고 전화 받으면서 교환하시는 분들, 친절하지 않으면 전부 체크가 되어서 점수가 내려가기 때문에 어느 시점까지는 친절하게 합니다. 딱 한계에 차서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랬을 때 뇌의 작동부위를 사진을 찍어보니까 이것을 공감피로라고 하는데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백세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것을 하되 공부를 해야 됩니다.
특히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마음공부는 그냥 무턱대고 하는 공부가 아니고 마음공부 이론을 철저하게 알아야 돼요. 요즘 너무나 많은 좋은 정보들인 책들이 있어요. 그리고 선원에 오셔서 끊임없이 법문을 듣고 여기에 프로그램대로 자꾸 참석을 해서 몸으로 체화를 해야 돼요. 마음공부 마음수행을 하면서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하고 마음공부를 안 하고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하고는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마음공부는 연기적 사유방식으로 중도적 행을 하는 것, 이것이 참사람 수행 결사에요.
자애미소명상도 많은 분들이 참 좋은 프로그램이고 이것을 통해서 효과를 보셨는데 이것도 심화과정을 기획할거구요. 2~3년에 걸쳐서 연구 작업이나 이론적인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 이제 확산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상도선원 신도들이나 불자들만 이것을 하라고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라는 말을 빼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하고 깊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서 그 마음속에서 이미 자비로 무궁하고 지혜로 충만해 있는 스스로 각성할 수 있고 자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저는 자신하기 때문에 그냥 보편화 시키고 싶어요. 절집에 안 오더라도 학교 현장에서나 회사 현장에서 아무나 혜택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원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미산 스님, 상도선원 자애미소명상법회 법문(2015.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