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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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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애명상의 효익
등록일 2017-01-19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자비慈悲, 대자大慈, 에 관련된 말씀을 경청하고 법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선재동자는 대광왕의 발에 예배드리고 말했다. 성자시여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아야 합니까?

왕이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대자당행(大慈幢行)을 닦았다. 나는 부처님 도량에서 이 법을 듣고 사유하며 관찰해 수행하였다.

나는 왕이 되어서 이 법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다스린다. 대자행大慈行, 커다란 자애의 행으로 세상을 따르고 중생을 인도하며, 중생에게 대자애大慈愛로 수행하도록 권유한다. 이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으로 삼고 중생에게 큰 자애를 수행의 근간으로 삼으라고 하며 이행利行으로 중생이 법성에 머물러 사용하도록 가르친다.

또 중생들이 사랑스런 마음에 머물러 큰 자애로 근본을 삼고 큰 자애의 힘을 갖추게 한다. 나는 이 법으로 모든 중생이 즐겁고 환희로우며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청량함을 얻게 해준다. 또한 이 법으로 생사의 애착을 끊고 정법의 법희(法喜)를 향유하도록 해주며 번뇌의 때를 씻고 악업의 장애를 막아준다. 또 생사의 흐름을 끊고 진실한 법의 바다에 들게 하며 윤회의 길을 끊고 온갖 지혜를 갖추며 마음바다를 깨끗이 하여 견고한 믿음을 내게 한다. 나는 이와 같이 대자행에 안주해 있고 이 법으로 세상을 교화한다. 보살들은 사랑스런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두루 보호하고 설령 중생에게 상중하 근기가 있을지언정 중생을 평등하게 관찰한다. 큰 자애는 큰 땅, 대지와 같아서 중생을 무궁하게 성장시킨다.’

 

이 말씀은 화엄경 입법계품 제34품에 나옵니다. 불교 대승경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경 중에서도, 또 다른 아주 아름다운 필치와 소설과 같은 구성으로 유명한 경이 바로 입법계품입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뵙고 하는 질문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살 즉 보디사트와 (bodhisatwa)” -깨달음을 향해서 끊임없이 발심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중생들을 위해서 계속 연민심을 가지고 중생들을 제도하는 본인을, 당사자를 보살이라 하죠- 보살이 어떻게 행을 배우고 어떻게 길을 닦아가야 되는지, 보살도를 닦아가야 되는지 두 가지 질문을 만나는 선지식마다 하고 있습니다. 이를 여쭙자 대광왕大光王, 큰 광명의 왕은 선재동자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나는 보살의 대자당행을 닦았다대자大慈, 는 메따(metta), ()는 까루나(karuna). 자비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가지 행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는 사랑스럽고 자애스러운, 아주 긍정적인 마음을 표현하고, 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 부정적인 영향 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고통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비에 해당됩니다. 그것을 합쳐서 자비라고 합니다. 자비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리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사랑과 자애의 마음을 주어서 긍정적인 삶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자비입니다.

 

행법상 자애만을 떼어서 긍정적인 면들을 극대화했을 때 부정적인 면들은 그것에 의해서 상쇄되면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자애명상입니다. 부처님 당시 때부터 초기경전에서는 비명상보다도 자명상, ’메따명상이 확고하게 전승되어 있고 상좌부에서는 청정도론에 자비 수행 중에서 자수행을 가장 구체적으로 자세히 행법을 말씀해놓으셨고, 수행은 자수행에 준해서 수행을 하게 됩니다. 수행도 마찬가지고 사수행도 그렇다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더욱더 자애수행이 많이 전승,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 긍정심리학이 발달해 가지고 긍정적인 심리적 태도를 가지고 삶을 살면 호르몬이 변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굉장히 효과적인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여 긍정심리학에서 계속 이것을 강조하다보니까 심리학 전반에 또 사회 전반에 이런 경향성이 많이 퍼져있습니다. 서양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제 긍정적인 마음과 자애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느냐, 물론 자애도 긍정적인 마음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자애가 정말 자애이려면 밑바탕에 지혜가 작용해줘야 합니다. 지혜 없는 자애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반야지혜를 강조했죠. 초기경전부터 시작해서 모든 불교 전통이 반야지혜, 지식이 아니고 그냥 일반지혜가 아니고, '쁘라즈냐(Prajna)‘ 즉 삶의 본질을 통찰해서 꿰뚫어 알아서 근원적으로 존재를 보는, 아주 바탕에서부터 존재를 보는 그런 안목, 혜안, 이것을 반야지혜라고 하죠. 이게 바탕입니다.

 

그래서 여기를 굉장히 많이 강조해놨어요. 모든 수행이 여기에 초점을 맞춰요. 우리가 아까 반야심경 암송을 했잖아요. 반야심경 핵심이 그겁니다. 전부 반야지혜 입장에서 보도록 하는 겁니다. 반야지혜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공이에요. 텅 비어 있어요. 그럼 그냥 공이냐? 그건 아니고, 원인과 조건들에 의해서 결과가 만들어진다. ,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는 것으로써 존재가 계속 움직여 가고 있다는 통찰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반야지혜거든요. 그런데 반야지혜만을 강조하다보니까 자비의 측면들이 소홀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자비를 자꾸 강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강조할 때 항상 같이 이야기 해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왕은 특히 무엇을 전문으로 하고 있느냐? 대자행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이 경전에서도 나는 부처님 도량에서 이 법을 듣고 사유하며 관찰해 수행하였다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부처님 도량에서 들었다. 사유했다. 수행했다. 이 세 가지가 지혜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지혜라고 합니다. 첫 번째 듣는 지혜. 여러분들이 지금 법문을 듣고 있어요. 이것이 지혜를 증장시키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바탕이 되는 행법입니다. 법문을 많이 들으면 자꾸 듣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두 번째는, 듣고서 . 이게 참 옳은 말씀이구나. 진리의 말씀이구나. 이것을 내 삶 속에 스며들게 하고 나하고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듣고 사유하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사유를 통해서 지혜를 더 확실하게 자기화하는 것이 바로 사입니다. 마지막이 그냥 지혜로써 이렇게 해야지 하고 끝나면 더 이상 깊은 체화로 들어갈 수 없지요. 그래서 지혜에도 체득이 꼭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 닦을 수. 는 원래 바와나’(bhavana)‘ 이게 개발한다 그런 뜻입니다. 심전을 개발한다. 마음 밭을 개발해서 씨앗을 심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뜻이 있거든요. 수가 불교수행에 매우 중요한 결과입니다. 수는 끊임없이 지금 여기에 깨어서 마음 관찰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관찰해서 수행하였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대승경전이지만 초기경전에서 나오는 말씀이 다 근간이 되어 있어요. 그러면 관찰해서 수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념처죠. 사념처는 몸을 관찰하는 것, 느낌을 관찰하는 것, 마음을 관찰하는 것, 마음의 대상인 법을 관찰하는 네 가지가 구체적인 관찰 수행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나는 왕이 되어서 이 법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다스린다.” 근데 이 왕은 특히 무엇을 전문으로 하고 있느냐? 대자행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대자행大慈行이 무엇이냐? 커다란 자애의 행법을 가르치는 것, 저희 상도선원에서 자애미소명상을 특화해서 동안거 동안에 3회에 걸쳐서 일주일씩 하루 두 시간씩 진행해서 그제 원만하게 회향을 했습니다. 평균 40명 이상이 꾸준하게 참석을 해서 참석하신 분들은 다들 환희심을 가지고, 자애명상을 기본과정만 했는데 연결해서 도반들하고 하니까 참 좋고 이제 삶 속으로 점점 스며드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해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대자, 대자애를 수행하도록 권유한다. 중생을 대자행으로 인도하고 중생들에게 대자애의 수행을 하도록 권유한다.” 저도 대광왕의 말씀을 따라서 상도선원을 대자애행의 자애행법을 수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를 해봅니다.

 

중생이 법성에 머물게 한다... 그 온전함, 법의 성품을 깊이 관찰해 보면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온전하다는 겁니다. 

이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을 삼고 중생에게 대자애로 수행의 근본을 삼으라고 하며 이행으로 중생이 법성에 머물려 사유하도록 가르친다.” 이행利行은 이로운 행입니다. 사실 자애수행을 계속하다보면 이로운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냥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렇게 하면 중생이 법성에 머물게 한다. 여기서 법성, 법성에 머물러 사유하도록 한다. 이것이 대승에서 말하는 참 중요한 점인데요. 그래서 제가 자애미소명상을 설계할 때 법성, 불성, 불성이라는 말은 제가 명상을 할 때 자주 쓰지는 않습니다. 그 온전함, 법의 성품을 깊이 관찰해 보면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온전하다는 겁니다. 그 온전함 속에 무궁한 자비와 한량없는 지혜가 함께 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이고 쓰려는 태도를 갖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항상 중생이니까, 나는 항상 못났으니까, 나는 항상 부족하니까, 나는 항상 죄인이니까,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에는 거기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가 있을 수 있어요. 물론 종교에서는 하나님에게 아니면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는 종이로소이다 하면서 나를 낮추고 하심하면서 온전히 자기를 비워내는 방법으로 수행에 들어가는 깊은 경지에 들어가는 방법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자애를 강조할 때 쓰는 방법은 매우 긍정적인, 커다란 긍정을 통해서 거기에 도달하고자 하는 법성의 본래 우리가 늘 지금 한순간도 쓰지 않은 적이 없는데 우리 인식 상에서는 인지하지 못할 뿐이에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5프로 미만이에요. 95퍼센트는 인지가 안돼요. 인지가 안 되는 영역에서 계속 실제 벌어지고 있거든요.

 

중생들이 삶속에서 사랑스런 마음, 긍정적인 마음, 부드럽고 편한 마음, 행복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에 힘을 갖게 돼요. 

모든 존재 현상들이... “또 중생들이 사랑스런 마음에 머물러 대자애를 근본으로 삼고 대자력을 갖추게 한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에요. 중생들이 삶속에서 사랑스런 마음, 긍정적인 마음, 부드럽고 편한 마음, 행복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에 힘을 갖게 돼요 자애의 힘을 갖게 돼요 큰 자애의 에너지를 갖게 되요. 자애명상을 하신 분들은 금방 느끼죠. “. 스님 굉장히 몸과 마음의 분위기가 날로 변해가고 있어요긍정적 에너지 아우라가 생기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자애수행의 방법으로 중생들을 늘 환희롭게 해주고 몸에 고통이 없게 해준다 

나는 이 법으로서 모든 중생이 즐겁고 환희로우며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청량함을 얻게 해 준다자애 수행의 방법으로 중생들을 늘 환희롭게 해주고 몸에 고통이 없게 해준다. 이거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자애미소 명상 처음 할 때는 절을 개발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절을 개발해서 같이 해보니까 많은 분들이 몸이 가뿐해지고 편안해지고, 여러 가지 것들이 해소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몸은 참 고마운,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이런 욕계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마운 도구입니다.

 

미산스님, 자애미소명상법회 법문(201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