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친절한 자비행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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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1-20 |
❤ 미산 스님, 상도선원 하트스마일명상법회 법문
2015년 10월 4일
대승기신론을 보면 세 가지 발심을 이야기해요. 발심이라 함은 발보리심의 준말인데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내는 것인데 그 마음 바탕에는 대비심이 있어야 합니다. 대비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은 얼마가지 못하고 껍질만 깨달으려고 하지 진정한 깨달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발심을 세 가지로 보는데 신성취, 해행발심, 증발심입니다.
불교는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이치에 맞게 분별해서 인정이 되었을 때 깊이 사려하고 깊이 그렇다고 받아들였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입니다. 불교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인 종교입니다. 그다음 행동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행동으로 옮겨가서도 미심쩍으면 직접 깨달아야 합니다. ‘신ㆍ해행ㆍ증’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 발심입니다.
기신론에서는 심을 세 가지로 보는데 신은 첫 번째는 직심, 바르게 본래 깨달아 있는 그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지혜와 자비로 무궁한 마음이다’ 이를 ‘온전함’이라고 하는데 온전함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하트스마일 명상을 유도할 때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온전하다’고 했을 때 온전함을 믿을 수 있나요? 지난 일주일 내내 속상했어요. 화나고, 실망하고 그런데 어떻게 내가 어떻게 부처님이에요. 이런 생각이 올라올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함을 받아들이고 바로 그 상태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제가 하는 하트스마일명상의 핵심이 그것입니다 온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 깨어 있는 것, 이것이 첫 번째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심심이에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끄달려 가다보면 이러한 것들이 우리 마음이 그런 것으로 착각하게 돼요. 우리의 마음은 깊고 광활하고 머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습니다. 그것이 바로 깊은 마음입니다. 깊이 느껴보면 내가 만들어 놓은 생각이나 감정의 틀이 아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지혜와 자비가 있습니다. 이것이 안 받아들여지면 체험이 되지 않았으면 그냥 믿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대비심입니다. 믿는 마음에는 대비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는 마음에는 내가 고통스러운 것처럼 다른 사람도 고통스럽고, 그 고통스러움을 내 스스로도 해결하지만 다른 사람들 고통도 내가 해결 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 고통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냐고 생각하면 믿음이 안 나와요. 인간은 이타심을 가지고 태어 나기 때문에 이타심을 이미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트스마일명상의 본질은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자비로운 마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도록 하고, 자비로운 마음은 지혜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트스마일 명상은 그 상태에 접속해서 인지 하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행법이 필요한데 화엄경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53선지식 중 19번째 선지식을 친견하고서 가르침을 받는 그 대목을 보고서 아, 분명하게 행법으로 존재했구나! 그런데 왜 이것이 사장되고 드러나지 않았을까 고민해왔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그것이 잘 전승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체왕 큰스님 모시고 한 달째 자비산림대법회를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으로 돌아가면 행법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짧아서 행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어요. 구체적인 행법은 대승경론에서 천태지자선사의 석선바라밀차제선문에서 확인할 수 있구요, 제 논문 후반부에 자애명상, 하트스마일명상의 이론적 틀로 천태지자선사의 차제선문을 정리해놨습니다.
하트스마일 명상을 진행하다 보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현상을 겪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특히 대표적인 현상이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물이 흐른답니다. 하트스마일명상의 본질은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자비로운 마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도록 하고, 자비로운 마음은 지혜를 바탕으로 합니다.
대광왕의 말씀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이 법으로 생사의 애착을 끊고’ 이 명상법의 궁극적인 것은 생사의 애착을 끊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끊어지냐? 지혜로 끊는 겁니다. 지혜의 칼이 없으면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통찰이 없으며 안 됩니다. 정법의 법피를 입는 것입니다. 그냥 일시적으로 내 몸과 맘이 편안해지고 병이 없어지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정법을 깨달아서 법의 환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번뇌의 때를 씻고 악업의 장애를 없애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은 모든 악업들, 장애가 많기 때문에 수행이 안되는 것입니다. 하트스마일 명상을 하면 업의 장애가 빨리 해소됩니다.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 수행하시다가 장애로 고통스러워하는 분들 많이 있습니다. 선방 스님들도 자비 명상해야 한다고 저는 끊임없이 주장합니다. 「행복한 간화선」을 쓰신 일선 스님께서 자기 경험을 그대로 토로해놨어요. 수행이 안 되고 마군이 많이 끼고 업이 발동하는데 왜 그럴까 보니까 깨달으려고만 아등바등했지 자비심이 너무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먹고 선방을 내려와서 수행을 10년간 했어요. 자비심으로 사람들과 부대기고 돌봐주고 동고동락하면서 계속 하니까 다시 큰 발심이 생기고 방법이 분명해지고 나중에 자비실천이 중요하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스님 주장은 선방 한 철나면 스님들은 만행 무조건 봉사를 가야 한다고 합니다. 자비심을 실천해가야지 그 다음 수행이 되지 자꾸 파고든다고 한쪽으로만 가면 더 이상 진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자는 대지와 같은 큰 땅과 같아서 중생을 성장시킨다.’ 대지는 구리고 냄새 나는 오염물도 어떤 것도 버리지 않고 받아들여서 정화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갖추고 있는 대자비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행법이 부족합니다.
상도선원의 하트스마일명상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 쉽지만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깊이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적합하도록 지속적으로 보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친절한 행법이 필요한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