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늘 본질에 깨어 있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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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1-20 |
이번 동국대 사태는 이사진을 포함한 모든 임원들이 퇴진을 하기로 결정하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부처님의 자비가 진정으로 무엇인가 다시 한번 정리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트스마일명상을 하면서 자비를 늘 강조해왔습니다.
저는 동국대 사태 해결을 위해 이사회에서 시종일관 생명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가 늘 말하는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고,
이사장이니 하는 자리를 가지고 다투는 모습들이 정말로 세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이런 말씀으로 여러 방면에서 호소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감사를 포함한 임원과 이사장이 사퇴하고
교수들은 단식을 풀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조건을 걸어서 일단락 지었습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내 견해見解가 옳다고 하는 그 견해가 발생합니다. 애견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이 명예욕입니다.
이번 동국대 사건들은 정리하면서, 도대체 우리 인간들이 갖고 있는 오욕락五慾樂중에서 어떤 욕심이 가장 강할까요?
오욕락이 뭐죠? 재물욕 財物慾, 수면욕 睡眠慾, 명예욕名譽慾, 색욕色慾, 식욕食慾이 다섯 가지 욕망이 오욕락입니다.
이 욕구들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이고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수행자들에게도 이 욕구들은 기본 욕구이기 때문에 이 자체가 죄가 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 이상이 되고 필요 이상이 돼서 경직되고 집착심執着心이 강화됐을 때
애착이 되고 욕탐慾貪이 되고, 탐착貪着이 되었을 때 세속인, 수행자 누구도 해침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다섯 가지 욕망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들까요?
먹는 거요? 제가 사흘 굶어보니까, 4일째 이사회 간담회를 하러 갔는데 음식이 나오는데
그날은 왜 그렇게 음식이 맛있게 보이고 물만 마시고 있으려니까 보통 고역이 아니더라고요.
수면욕도 일주일간 잠을 전혀 재우지 않으면요, 미쳐버릴 정도로 수면에 대한 욕구가 강해집니다.
그래서 고문을 하려면 사방이 유리로 된 방에 넣고 고문을 한다고 하죠. 그만큼 수면욕을 절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재산, 재물욕 강력하죠. 재산이 많아도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색욕, 대를 이으려는 기본적인 욕구는 우리는 색심은 인정합니다.
그 이외에 다른 욕정을 참지 못하는 경우 크게 지탄받고 국회의원도 성희롱 등으로 명예를 훼손하게 되거든요.
종교인에게는 뭐가 가장 강할까요? 명예욕? 수면욕?
제가 어릴 때 잠을 제대로 자 봤으면…왜냐하면 10대 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예불 모시고
6시에 밥 먹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학교를 가야 하는 것이 반복이 되니까 잠자는 게 그렇게 소원이었어요.
그게 익숙해지니까 이제 수면욕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무슨 욕심일까요?
천목 중봉선사의 산방야화라는 책을 이번에 자비 논문을 쓰면서 쭉 보니까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선림고경총서 성철 큰스님께서 원력을 내서 만든 시리즈 37권중 두 번째 권이거든요.
산방야화는 구성이 재미있어요.
어느 날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는데 한 객승이 천목 중봉선사에게 와서 질문을 하는 거예요.
이 질문 내용이 수행에 관한 질문도 있고 삶에 관한 질문, 스님 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실질적인 질문,
주지할 때 어떤 태도로 해야 합니까? 등등 재미있는 질문들이 여기에 꽉 차 있습니다.
답이 선사로서의 답, 근원을 꿰뚫는 수미일관하는 답이어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통쾌했어요.
여기에 보니까 제가 아까 여러분께 했던 질문이 나와 있어요.
'명예욕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 객승이 질문을 했어요. 재미있지 않나요?
이 객승이 주지를 해보고 나서 경험이 담겨있는 질문이었어요.
제가 본문을 읽어드릴 테니 느껴보세요. 어떤 심리적 태도였는지.
저는 반평생이나 공적한 도량에서 수행을 했는데도 명성과 영리의 세계로 감정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돕지 않는다고 조물주만 원망하던 차에 주지의 소임을 맡게 되어 기쁘게 이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 주지라는 직책을 걸머진 이후로는 도리어 그 이전보다 편안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의 잘잘못과 모든 대중들의 기쁨과 노여움이 모두 제 마음에 모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생각에 빈틈이 생기면 재앙과 욕심이 몰려 들었습니다.
어찌 옛날의 군주들께서도 이러셨겠습니까? (중략)
도대체 명예란 무엇이 길래 이토록 숭상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솔직하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객승이 자기가 주지할 때 일어난 명예욕,
대중들과 부딪치면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을 회고하면서 드린 질문 같아요.
평생 동안 산중 공적한 도량에서 화두 들고 고요한 마음자리에서 수행을 할 때는
거의 도인이 다 된 것처럼 느낌 속에 빠지거든요.
현장 삶 속에서 주지라고 하는 직책을 이사장, 이사 등 불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직책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그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살아있는 수행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이번 일을 하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어제 밤에 제가 다시 읽으면서 너무나 마음에 확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었어요.
천목 중봉선사의 답이 아주 깊고 본질적입니다. 답이 이렇게 나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예 그 자체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집착합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애견愛見, 내 견해見解가옳다고 하는 그 견해가 발생합니다.
애견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이 명예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욕은 오욕 중에서 첫 번째 가장 강력한 것이 명예욕입니다.
이 구절이 이번 이사회 여섯 시간 동안 제가 정말 위태위태한 상황들을 겪어내면서
힘들었던 이토록 끈질긴 명예욕이 있을까? 생각을 한 것이
다음에 읽어드릴 구절을 읽으면서 '아! 정말 그럴 수 있겠구나',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욕망이 아주 깊숙이 들어있을 때에는 아직 미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연을 만나 즉 바깥경계를 만나 욕심이 움직이면
그때는 힘이 강해져서 수만 명의 장정도 대적할 수 없고 수천 명의 성인이 있어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합니다. 또
한 도끼와 톱으로 위협하고 뜨거운 가마솥의 형벌이 기다린다고 해도 돌아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장에 볼 수 없는 인과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명예 중에서도 가장 제일 가는 명예는 성현聖賢과 도덕道德이라는 명예입니다.
두 번째는 공리公利라는 명예입니다. 공리는 내가 남들을 이롭게 한다,
내가 남들을 복을 주는 생명 살림, 생명 나눔, 이런 것도 다 한다, 이런 모든 것도 굉장히 큰 명예입니다.
세 번째는 기능技能이라는 명예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기능적으로 뛰어나고 스포츠도 잘 하고 무엇도 잘하고 이게 세 번째 입니다.
성현 도덕, 성현인 척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그런 허구적인 마음,
도덕을 빙자해서 자신을 존경하게 하는 명예심,
또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다는 명분하에 명예를 취하려고 하는 마음,
기능을 뽐내어서 오는 우쭐한 명예로움. 이 세 가지가 가장한 강력한 명예욕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들, 수행자들이 어느 시점에서 제대로 했다고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일을 하고 거기에 빠져들어 집착하다 보면 이런 현상이 나오는구나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옛 성인들의 자취를 살펴보면 그분들은 이치의 근원을 통찰해 꿰뚫어 보시고
가슴속에 참다운 본질을 간직하여 잠시라도 그것을 잊어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핵심을 꿰뚫는 말씀입니다. 옛 스님들께서 제가 어렸을 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출가한 사람들이 출가정신이 자꾸 잊혀지고 희석되면 그때부터 명예욕과 같은 욕망들이 도사리게 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 전에 나아가서 자기 머리를 이렇게 만져보라’고 했어요.
여러분들은 머리카락이 있지만 스님들은 머리카락이 없잖아요.
‘아 내가 출가했구나! 아, 출가 수행자구나! 하는 생각을 놓치지 말고 늘 깨어 있어라.’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한량한 세월이 지나도록 지극한 도만 구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생사의 마구니를 타파하여 본래의 신령한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육바라밀을 세밀하게 실천하고 사무량심을 널리 베푼 이유는 대자한 마음을 내어 대비심을 여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純一眞實이라고 합니다. 안으로는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고 밖으로는 명예를 사모하는 욕망이 없으며
자기 자신을 뽐내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순종을 한다고 그 사람을 편애해서 대중화합을 깨지 않고 자기 뜻을 거역한다고 해서 미워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되면 가까이 와서 아부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런 사람들만을 편애하면 대중들과의 불협화음, 조화를 깨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지도자가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지시를 했을 때 그 순간 모든 요소들을 다 참작하지 못하고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좋은 의견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서슴지 않고 뜻을 받아서 실행을 해야지 자기 뜻에 반한다고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만물을 평등한 자비로서 대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CEO, 가장,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구성원들 하나하나를 대해야 한다는 것과 통한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드러나고 그 감화력이 대중들에게 퍼져가고
또 종교인이라면 스승으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대접은 명예가 아니라 대중들이 그분을 찬탄하고 존경하는 것이죠.
이런 관계가 바람직하고 어떤 공통체가 되었건 이런 관계가 형성이 되었을 때
그 공동체는 융성하고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때 스승은 우쭐하거나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는 마음에 빠지고 머물러 있으면
그것이 또 명예심으로 자라납니다. 정말 순간순간 깨어서 본질에 깨어서
모든 것이 공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중봉선사가 말씀하신 제대로 성취된 공덕으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자비심으로 작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해봤습니다.
미산 스님, 상도선원 하트스마일명상법회 법문
2015년 12월 6일